... 색은 그 사이에 있다.

렘브란트의 삼각형, 어둠이 그린 뺨

세트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뺨에 삼각형 하나만 띄워 줘.” 주된 빛을 얼굴의 옆 위쪽에 두어, 어두운 쪽 뺨에 작은 빛의 삼각형이 맺히게 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그것을 렘브란트 조명이라 부르고, 삼각형이 또렷하게 떠오르면 됐다고 말한다. 색보정실에서도 이 삼각형은 자주 입에 오른다. “삼각형이 살아 있다”, “삼각형이 죽었다”는 말로 우리는 그 얼굴이 제대로 찍혔는지를 가늠한다. 삼각형은 빛이 만든 모양이고,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빛의 문제로 다룬다. 이 글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뺨 위의 삼각형은 빛이 그린 것이라기보다, 코의 그림자와 뺨의 그림자가 서로 닿으면서 그 사이에 비워 둔 자리라고 읽을 수 있다. 밝은 조각 하나가 아니라 그 둘레의 어둠이 얼굴의 깊이를 정한다는 이야기를, 삼각형이 어디서 오는지부터 따라가며 하려 한다.

삼각형이 생기는 자리

얼굴에 주된 빛, 곧 키 라이트(key light)를 하나 놓는다고 하자. 그 빛을 얼굴 정면에서 옆으로 돌리면 코가 그림자를 만들기 시작한다. 빛을 위로 올리면 코 그림자는 아래로 길어진다. 옆으로 더 돌리면 반대쪽 뺨이 어둠에 잠긴다. 어느 높이와 각도에서 코 그림자의 끝이 뺨의 어둠과 닿는다. 그 순간 눈 아래에는 두 그림자가 미처 덮지 못한 작은 밝은 조각이 남는다. 이것이 삼각형이다. 삼각형의 세 변 가운데 둘은 빛의 가장자리가 아니라 그림자의 가장자리다. 빛을 한 걸음 옮기면 그림자도 따라 옮겨 가고, 삼각형은 두 그림자가 다시 닿는 자리로 옮겨 간다. 코 그림자가 뺨에 닿지 않으면 삼각형은 생기지 않고, 너무 깊이 겹치면 삼각형은 닫힌다. 그 사이의 자리는 그리 넓지 않다. 몇 도라고 적어 둔 숫자는 교과서의 예시일 뿐이고, 코의 길이와 광대의 높이에 따라 얼굴마다 그 자리가 달라진다.

이름은 화가에게서 왔다.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는 네덜란드의 화가로, 평생에 걸쳐 자신의 얼굴을 여러 번 그렸다. 그의 초상에서 빛은 얼굴 전체를 고르게 비추지 않는다. 한쪽은 밝고 다른 쪽은 배경의 어둠과 거의 구분되지 않을 만큼 가라앉으며, 어두운 쪽 뺨에 작은 빛이 남는 구성이 되풀이해 나타난다. 그 그림을 닮은 빛에 뒤에 사진과 영화 현장이 렘브란트 조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화가 자신의 말이 아니고, 그가 이 조명을 고안했다는 뜻도 아니다. 밝음과 어둠을 강하게 맞세우는 그림의 방식은 따로 명암 대비(chiaroscuro, 키아로스쿠로)라 부르며, 그보다 앞선 화가들에게서 이미 있던 전통이다. 명암 대비는 그림의 전통이고, 렘브란트 조명은 얼굴에 생기는 그림자의 모양이다. 둘은 같은 말이 아니다. 그림을 다시 보면 한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그의 얼굴에서 밝은 쪽은 좁고 어두운 쪽은 넓다. 화가가 공들인 것은 밝은 자리의 모양이 아니라 그 자리를 둘러싼 어둠의 깊이였다고 읽을 수 있다. 어둠이 충분히 깊어야 작은 빛이 뺨 위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밝은 쪽과 어두운 쪽의 비율

삼각형이 모양의 일이라면, 깊이는 비율의 일이다. 조명 현장에는 밝은 쪽과 어두운 쪽의 밝기 차이를 부르는 말이 있다. 조명비(lighting ratio)다. 주된 빛이 닿는 쪽과, 그림자를 살짝 채우는 보조 빛(fill light)만 닿는 쪽을 노출계로 재어 견준 값이다. 이 값은 촬영장의 빛을 잰 것이다. 화면에 담긴 값은 다르다. 카메라와 톤 커브를 거친 뒤 두 뺨이 파형(웨이브폼) 위 어느 높이에 놓였는가는 따로 읽어야 하고, 촬영장에서 잰 차이가 화면에 그대로 남는다는 보장은 없다. 눈에 보이는 깊이는 또 다른 층이다. 차이가 작으면 얼굴은 평평하게 보이고, 차이가 커질수록 코와 광대가 앞으로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한 가지는 떼어 두어야 한다. 같은 삼각형은 차이가 작을 때도 클 때도 생긴다. 삼각형의 모양은 빛의 자리가 정하고, 얼굴의 깊이는 둘레의 어둠이 얼마나 가라앉았는가가 정한다.

삼각형이 흐려지는 순간

색보정실의 불이 꺼져 있다. 모니터에는 창가에 앉은 남자의 얼굴이 멈춰 있고, 왼쪽 뺨 위에 삼각형이 하나 떠 있다. 파형 위에서 밝은 뺨과 어두운 뺨은 멀찍이 떨어진 두 높이에 놓여 있다. 우리는 먼저 섀도(shadow, 어두운 부분)를 들어 올린다. 어두운 쪽 뺨에서 수염 자국과 턱선이 드러나고, 감독이 주문한 “표정이 보이는 얼굴”이 된다. 파형에서는 아래쪽 덩어리가 위로 올라와 두 높이가 가까워진 것이 보인다. 그런데 삼각형이 흐려졌다. 삼각형이 작아진 것이 아니다. 코의 그림자와 뺨의 그림자가 옅어지면서 둘 사이의 틈이 더는 틈으로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모니터 위의 얼굴은 더 많이 보이는데 더 평평해 보인다. 섀도를 다시 내리고, 대신 삼각형이 있던 자리만 조금 밝힌다. 턱선은 어둠으로 돌아가고 삼각형은 다시 떠오른다. 의자를 뒤로 밀고 멀리서 본다. 같은 얼굴이 모니터 안쪽으로 한 뼘 들어가 보인다. 이 장면에서 우리가 움직인 것은 삼각형이 아니다. 삼각형을 둘러싼 어둠의 깊이, 곧 밝은 쪽과 어두운 쪽의 차이를 움직였고, 삼각형은 그 결과를 따라왔을 뿐이다. 여기서 두 시간이 갈린다. 촬영장에서 비율은 조명이 정한다. 키 라이트와 보조 빛의 거리와 세기가 그날 그 얼굴의 깊이를 한 번 결정한다. 색보정실에서 비율은 다시 열린다. 섀도와 하이라이트의 손잡이 하나로 우리는 그날의 결정을 되돌리거나 덧쓸 수 있다. 되돌릴 수 있다는 것과 되돌리는 편이 낫다는 것은 다른 말이다. 섀도를 들어 올려 얼굴을 더 보이게 하는 일은 쉽고, 그만큼 자주 일어난다. 그때 가장 먼저 잃는 것도 삼각형이 아니라 그 둘레다. 그림자 쪽 뺨을 밝히면 삼각형은 그 자리에 남아 있는데 얼굴은 어디선가 얇아진다. 우리는 혹시 더 많이 보이는 얼굴을 더 잘 보정된 얼굴로 여겨 온 것은 아닐까.

결론

렘브란트의 삼각형은 빛의 모양으로 배운다. 그러나 그 삼각형을 만든 것은 코와 뺨에서 내려온 두 그림자이고, 삼각형을 떠오르게 한 것은 그 둘레의 어둠이다. 그림자가 어디서 만나고 어디서 멈추는지가 조각의 모양을 정하고, 밝은 쪽과 어두운 쪽의 차이가 얼굴의 두께를 정한다. 그러니 뺨 위의 삼각형이 또렷하다고 해서 얼굴에 깊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삼각형이 있는 얼굴과 깊이가 있는 얼굴은 다른 얼굴이다. 화가는 어둠을 깊게 깔아 작은 빛을 세웠고, 조명 감독은 빛을 높이 올려 두 그림자를 만나게 했다. 색보정실의 우리는 그 어둠을 얼마나 남길지 마지막으로 정하는 사람이다. 어둠을 걷어 내면 얼굴은 넓어지고, 어둠을 남기면 얼굴은 깊어진다. 둘 중 무엇이 맞는지는 장면이 정하지만, 무엇을 잃는지는 알고서 정하는 편이 낫다. 모니터 앞에서 섀도 손잡이에 손을 올릴 때, 손을 멈추고 한 번 물어볼 만하다. 지금 지우려는 것이 그림자인가, 아니면 뺨인가. 뺨은 어둠이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