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피부는 따뜻하게, 배경은 차갑게. 사람 얼굴을 주황 쪽으로 밀고 그 뒤의 벽과 하늘과 그림자를 청록 쪽으로 끌어내리면 어떤 영상이든 단숨에 ‘영화 같은’ 얼굴이 된다. 현장에서 ‘틸 앤 오렌지’라고 부르는 이 룩은 영화와 광고, 뮤직비디오를 가리지 않고 눈에 띈다. 빠르고, 예측할 수 있고, 실패가 적다. 그래서 우리는 이 대비를 공식처럼 외워 두고, 장면을 열기도 전에 손이 먼저 그쪽으로 간다. 이 글은 그 공식을 틀렸다고 보지 않는다. 다만 어느 장면에나 같은 답이 나오는 것을 다시 본다. 주황과 청록이 왜 그렇게 잘 갈라지는지, 그 갈라짐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리고 그 대비가 장면의 이유에서 나온 것인지 장면보다 먼저 와 있던 것인지를 묻는다. 청록과 주황은 공식이 준 답이다. 그다음의 색이 어디서 오는지는 아직 묻지 않았다.
마주 보는 두 색
보색은 색상환에서 서로 마주 보는 색이다. 색상환은 빨강에서 노랑, 초록, 파랑을 지나 다시 빨강으로 돌아오는 둥근 띠이고, 그 띠의 한 자리에서 지름을 그어 건너편에 닿는 색이 보색이다. 그런데 색상환은 하나가 아니다. 물감을 섞는 화가의 색상환은 빨강, 노랑, 파랑을 기본으로 하고, 모니터가 빛을 섞는 색상환은 빨강, 초록, 파랑을 기본으로 한다. 두 띠는 색의 간격이 달라서 같은 주황에서 지름을 그어도 건너편에 닿는 색이 다르다. 안료의 색상환에서 주황의 맞은편은 파랑이다. 빛의 색상환에서는 파랑과 청록 사이 쪽에 닿는다. 이 글은 모니터가 쓰는 빛의 색상환을 기준으로 말한다. 그러니 ‘주황의 맞은편은 청록’이라는 말은 법칙이 아니라, 어느 색상환을 펴 놓았느냐에 따라 자리가 조금씩 옮겨 가는 대략의 방향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마주 보는 두 색을 나란히 두면 서로가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화가들이 오래전부터 알고 써 온 성질이다.
그런데 왜 하필 주황인가. 답은 피부 쪽에 있다. 사람의 피부색은 살갗의 색소와 그 아래 핏기가 겹쳐 만드는 색이고, 밝기와 채도(색의 짙기)는 사람마다 크게 달라도 색의 종류, 곧 색상은 빨강과 주황과 노랑 사이의 좁은 띠에 모이는 경향이 있다. 벡터스코프(색의 종류와 짙기를 둥근 판 위의 점으로 보여 주는 계기)에 중립적인 조명 아래서 찍은 얼굴을 올리면 점들이 비슷한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것은 그 때문이다. 피부를 주황으로 만든다기보다 피부가 이미 주황 가까이에 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하다. 그러니 피부의 맞은편을 찾으면 자연히 파랑과 청록 어딘가에 닿고, 그 색으로 배경을 채우면 얼굴은 배경에서 떨어져 나온다. 어느 숏이든 같은 손으로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 룩이 어디서 처음 시작되었는지 우리는 단정할 수 없다. 다만 디지털로 색을 전면적으로 바꾸기 쉬워진 뒤로 자주 보이게 되었다는 것은 모니터 앞에서 일하는 우리 가운데 많은 이가 받는 인상이다. 공식이 잘 듣는 이유는 공식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피부가 색상환의 한 자리에 거의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갈라짐이 오는 곳
얼굴이 배경에서 떨어져 보이는 느낌, 이 분리감은 색의 종류 차이에서만 오지 않는다. 밝기에서 온다. 창가의 밝은 얼굴과 그 뒤의 어두운 방은 색이 비슷해도 갈라져 보인다. 채도에서도 온다. 선명한 뺨과 바랜 벽은 색상환에서 이웃이어도 따로 보인다. 면적에서도 온다. 넓은 청록 위의 작은 주황 조각은 눈에 띄지만, 주황이 화면 절반을 차지하면 작아진 청록 쪽이 도드라져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여기서 세 층을 갈라 두어야 한다. 촬영할 때 장면에 있던 빛, 그 빛이 화면에 담긴 값, 그 값을 보는 눈에 생기는 대비는 서로 다른 것이다. 공식은 가운데 층인 값을 밀어 세 번째 층인 대비를 얻는다. 첫 층, 그 장면에 어떤 빛이 있었는지는 묻지 않는다. 그래서 장면에 청록이 전혀 없던 사무실 숏에도 같은 청록이 들어온다. 그 자체가 틀린 일은 아니다. 다만 그 결과를 ‘피부는 주황이니 청록이 과학적 정답’이라고 부르는 것은 한 가지 선택을 법칙으로 올리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장면이 먼저 정해 둔 대비
늦은 밤 편집실이다. 모니터에는 창가 식탁에 앉은 여자가 있고, 창밖은 해가 막 떨어진 뒤의 하늘이다. 우리 손은 늘 하던 대로 움직인다. 얼굴을 집어 주황 쪽으로 한 눈금 밀고, 배경을 집어 청록 쪽으로 두 눈금 끌어내린다. 얼굴이 배경에서 뜬다. 익숙한 얼굴이다. 그때 옆에서 누군가 묻는다. 이 장면은 왜 이 색이어야 하죠. 손이 멈춘다. 타임라인을 앞 숏으로 되감는다. 앞 숏에서 여자는 같은 식탁에 앉아 있는데 아직 전구를 켜지 않았고, 창으로 들어온 저녁빛만이 얼굴 반쪽을 푸르게 적시고 있다. 지금 이 숏에서 여자는 손을 뻗어 식탁 위 백열전구를 켰다. 전구 빛은 주황에 가깝고 창밖에 남은 하늘빛은 파랑에 가깝다. 얼굴은 전구 쪽을 향해 있고 창은 등 뒤에 있다. 대비는 이미 거기 있었다. 전구와 하늘, 두 개의 빛이 한 식탁 위에서 만나면서 얼굴과 배경은 색보정이 닿기 전에 갈라져 있었다. 우리 손이 한 일은 그 갈라짐을 더 벌린 것만이 아니다. 얼굴 전체를 주황으로 덮는 바람에 창가 쪽 뺨에 남아 있던 푸른 기운까지 지워 버렸다. 두 개였던 빛이 화면에서는 하나가 되었다. 방금 민 두 눈금을 되돌린다. 그리고 얼굴의 밝은 쪽과 어두운 쪽을 따로 집어, 전구 쪽은 그대로 두고 창 쪽 뺨만 처음 화면에 있던 푸른 기운이 돌아올 만큼 식힌다. 화면을 더 차갑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한 덩어리로 덮였던 두 빛을 다시 둘로 갈라 놓는 것이다. 얼굴과 배경 사이의 대비는 조금 줄고, 얼굴 안에서 전구와 하늘이 만나는 대비는 돌아온다. 여기서 두 태도가 갈린다. 공식으로 쓰는 대비는 장면을 열기 전에 답을 알고 있어서, 어떤 숏이 와도 피부는 주황으로 배경은 청록으로 가른다. 결과는 빠르고 고르지만 숏마다 다른 빛의 사정은 그 아래 묻힌다. 장면의 빛이 정해 둔 대비는 그 숏에 어떤 빛이 몇 개 들어와 있는지를 먼저 세고, 그 빛들이 이미 만들어 둔 갈라짐을 찾아 거기에 손을 보탠다. 느리지만 앞 숏과 이어지고, 얼굴에 그 저녁의 시간이 남는다. 우리는 전구를 켠 손을 믿기로 한다.
결론
주황 피부와 청록 배경은 지워야 할 공식이 아니다. 피부가 색상환의 좁은 자리에 모이는 한 그 맞은편은 늘 비슷한 곳에 있고, 그 색으로 배경을 채우면 얼굴은 떨어져 나온다. 앞으로도 많은 화면이 그 답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 글이 묻는 것은 공식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순서다. 손이 먼저 가고 장면이 뒤따르는가, 장면이 먼저 있고 손이 뒤따르는가. 전구와 하늘처럼 한 장면에 들어온 빛들은 색보정이 닿기 전에 이미 서로 갈라져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할 일은 그 갈라짐을 찾아 조금 벌리거나 조금 좁히는 것이고, 색상환에서 맞은편을 찾는 일은 그 뒤에 와도 늦지 않다. 모니터 앞의 우리는 대비를 만드는 사람이기 전에 대비를 찾는 사람이다. 청록과 주황은 색상환이 준 답이다. 그다음의 색은 색상환이 아니라 장면이 준다. 전구 하나가 먼저 정해 둔 색이다.